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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우리는 가정에서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지만, 그 권위는 더 높은 권위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에서 그분의 권위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권위와 순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는 부모와 자녀 간의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즉 하나님과 부모 간에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샬롯 메이슨은 권위와 순종에 대해 매우 균형 잡힌 관점을 가졌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샬롯 메이슨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핵심 가치를 살펴보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샬롯이 교육 접근 방식 전체를 구성하는 기본 원칙이며, 이러한 가치를 확고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홈스쿨링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핵심 가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잠시 멈춰보겠습니다. 앞선 두 개의 포스팅(Personhood, Possibility)을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 위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Authority and Obedience: Core Values of Charlotte Mason – Simply Charlotte Mason
지금까지 우리는 “어린이는 빈 용기(container)나 백지가 아니라 전인적으로 태어나는 존재”이며, 따라서 어린이를 전인격으로 대하고 전인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어린이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운명이 유전된 성향이나 성격적 결함으로 결정되지 않는 것을 배웠고, 아이들이 좋은 성격을 형성하고, 악한 점을 최소화하거나 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핵심 가치는 어린이를 인격체로 대하고 그들의 삶에서 좋은 것을 키워나가도록 돕기 위해 필요한 관계에 주목합니다. 이 중요한 관계는 권위와 순종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 필수적인 관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자녀 교육을 위한 탄탄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순종하는 태도, 즉 샬롯이 말한 ‘유순함(docility)’이 필요합니다. 유순함은 가르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 반항적인 정신은 가르침을 거부합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반복하여 말합니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8:33),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13:1),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19:20)”
따라서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권위자의 가르침과 학생의 받아들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핵심 가치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샬롯이 우리 앞에 제시한 더 큰 그림을 살펴봅시다. 이 세 번째 핵심 가치를 성공적으로 이해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중요합니다. 샬롯은 권위와 복종 사이의 관계를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근본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A Philosophy of Education, p.xvii).
권위와 순종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회 질서를 위해서도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몇 주 전에 집 근처 시내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운전하고 가다가 멈춰선 차들 앞에 다다랐고, 우리는 내내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몇 대의 차량 행렬이 옆 차선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차선의 차들이 천천히빠지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공사장과 일하는 사람들을 피해 갈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자, 무엇이 이러한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가능하게 했나요? 권위와 순종입니다. 우리 차량 행렬의 맨 앞쪽에는 정지 표지판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사람을 알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표지판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따르고 싶지 않았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권위를 인정하고 협조했습니다.
정지 표지판을 들고 있는 사람은 우리보다 우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역할이 더 높은 지위나 더 나은 가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죠. 기다리는 운전자들이 열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권위와 순종은 단순히 양쪽이 그 상황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질서 있게 마땅히 해야할 일을 수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정지 표지판을 들고 있는 사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세요. 물론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은 권위자의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동시에 위에 있는 권위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권위자의 위치에서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던 거죠.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차량에 대해 마음대로 규칙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자신보다 권위 있는 사람으로부터 임무와 지침, 그리고 책임의 역할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권위자로서 행동하는 동시에 더 높은 권위자에게 순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가치의 핵심 개념입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가정에서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지만, 그 권위는 더 높은 권위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에서 그분의 권위에 순종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권위와 순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는 부모와 자녀 간의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즉 하나님과 부모 간에도 적용되는 겁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공사 관련자가 차량 운전자에게 권위를 행사할 때 상위 권위에 순종 할 책임이 있었던 것처럼, 가정에서 권위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부모도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큰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자녀가 이를 이해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가정의 권위자로서 어른들이 임의적인 규칙을 만들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그들에게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핵심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가정에서 독재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진실은 부모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으며, 우리는 삶과 가정에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녀를 돌보고, 하나님께 인도하며, 사랑의 법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고 실행되도록 가정 내에서 부모인 우리에게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자녀가 우리에게 순종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저는 성경에서 사울이 왕이 되고, 사무엘이 그에게 하나님의 규율, 즉 법에 순종하라고 당부하는 부분을 막 읽어준 참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딸이 내레이션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딸은 잠시 저를 쳐다보더니 “엄마는 규칙을 따르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뭐지!? 무슨 실수를 딸이 말하고 있는 거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니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규칙을 만드셨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샬롯 메이슨이 말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대응해야 할 일반적인 오해입니다. 아이의 관점에서 어른은 자신이 원하는 규칙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그 어떤 규칙도 따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어른은 취침 시간을 정하고, 돈에 대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언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해야만 하는” 것들이 어른들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것이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오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으로서 우리 또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도 권위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에게 “나도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규칙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규칙요?” 딸이 물었습니다. 저는 성경 암송 상자에 있는 몇 개의 구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친절하게 대하고,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우리 몸을 돌보는 것 등의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꽤 긴 대화였어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자폐증과 발달 지연, 특히 언어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 딸과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겐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딸이 권위와 순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자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권위자의 역할을 부여 받았고, 자녀가 그 권위에 순종할 책임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 임무를 주신 하나님께 순종할 책임이 있다는 이 핵심 가치를 분명히 자녀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권위와 순종은 모두 자연스럽고, 필수적이며,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우리에게 주어진 이 권위와 순종의 과제를 생각할 때, 몇 가지 적용할 것들이 떠오릅니다.
- 이 어려운 일을 받아들이시기를 격려합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가정에서 권위자가 되어야 할 책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자녀를 위한 권위의 자리를 거부하는 것은 더 높은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권위자로써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삶의 다른 일에 집중하게 되면서 그 헌신을 조금씩 느슨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책임을 소홀히 할 수도 있지요. 또 어른으로써 아이들이 싫어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 권위를 유지하는 것에 지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편하게 만들고 싶어하죠.
샬롯은 부모가 권위자의 역할을 포기하게 하는 많은 유혹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죠.
“The busy parent, occupied with many cares, awakes to find the authority he has failed to wield has dropped out of his hands; perhaps has been picked up by others less fit, and a daughter is given over to the charge of a neighbouring family, while father and mother hunt for rare prints.
In other cases, the love of an easy life tempts parents to let things take their course; the children are good children, and won’t go far wrong, we are told; and very likely it is true. But however good the children be, the parents owe it to society to make them better than they are, and to bless the world with people, not merely good-natured and well-disposed, but good of set purpose and endeavour.
“The love of ease, the love of favour, the claims of other work, are only some of the causes which lead to a result disastrous to society—the abdication of parents. When we come to consider the nature and uses of the parents’ authority, we shall see that such abdication is as immoral as it is mischievous. Meantime, it is well worth while to notice that the causes which lead parents to resign the position of domestic rulers are resolvable into one—the office is too troublesome, too laborious. The temptation which assails parents is the same which has led many a crowned head to seek ease in the cloister—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even if it be the natural crown of parenthood.” Parents and Children, pp. 12,13
“많은 걱정거리로 바쁜 부모는 자신이 행사하지 못한 권위가 자신의 손에서 사라진 것을 발견하곤 깨어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고유한 권위를 찾아 헤매는 동안 어쩌면 덜 적합한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집어 들고, 자녀는 이웃의 책임으로 떠넘겨져 있을지도 모르죠.
다른 경우에는 편안한 삶에 대한 사랑이 부모를 유혹하여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게 합니다. 아이들은 착하고 그리 잘못될 일이 없을 거라고 들어왔습니다. 맞는 말이죠. 그러나 자녀가 아무리 착하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성격이 좋고 성품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목적 의식과 노력으로 세상에서 선한 역할을 감당 하도록 사회적인 의무를 가지도록 말입니다.
“편안함에 대한 사랑, 호의에 대한 사랑, 어떤 일에 대한 불평은 사회에 재앙적인 결과, 즉 부모의 물러섬을 초래하는 원인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부모가 가지는 권위의 본질과 목적을 고려할 때, 그렇게 물러나는 것은 부도덕하고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편, 부모가 가정에서 권위자로써의 역할을 내려놓게 되는 원인은 하나, 그 일이 너무 번거롭고 힘들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를 위협하는 유혹은 왕관을 썼던 많은 지도자들이 수도원에 가서야 편안함을 얻었던 것과 동일합니다. ‘왕관을 쓴 머리는 불안하다’ 비록 그것이 부모의 자연스러운 왕관일지라도 말이죠.
오, 여러분, 이 선한 일에 지치지 마세요. 이 “자연스러운 왕관”이 가지는 권위는 가정에 있는 소중한 영혼들을 잘 돌보라는 창조주의 거룩한 명령입니다. 이 왕관을 두 손으로 들고 마음 속으로 그 임무에 충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 (이것은 중요한 사항입니다.) 일관성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정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다면, 일관된 순종이 어떤 것인지 본을 보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편리할 때나 기분이 좋을 때만 자의적으로 순종하는 모범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 대한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부모도 부모 위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중요한 개념을 자녀가 이해하도록 돕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부모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 및 우주에 대한 지식, 자신과 소유물에 대한 청지기 정신에 대해 가르치고 훈련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이며, 반드시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음식이 가득 담긴 카트를 밀고 가는데 아이가 언니, 오빠나 동생들을 자극하며 전체의 반이 설탕으로 만들어진 시리얼, 몸에 좋지 않으니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던 시리얼을 사달라고 조르고 징징대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하루 동안 이미 열두 번 이상은 “안 돼”라고 말하곤 그 여파를 감당해야 했고(누가 세나요?), 그날 수업은 힘들었고, 시간에 쫓기고, 피곤합니다. 지쳤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싫어하는 결정을 내리고 싶지도 않겠죠. 그러나 다시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들의 질문에 또 대답하고, 무엇이 옳은지 다시 상기시키고, 올바른 태도로 대응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오, 유혹은 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포기하고 쉬운 길을 택할 때마다, 내킬 때만 옳은 일을 할 때마다, 우리는 아이들과의 일을 스스로 망치게 됩니다. 자의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때때로 순종하고 다른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시리얼 한 상자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시리얼 자체는 그 결정의 결과에는 약간의 해만 미칠 뿐이죠. 그러나 행동 방침을 바꾸고, 옳다고 알고 있는 것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두었다는 사실에 더 큰 해악이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은 더 이상 순간의 욕망과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기에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그러한 욕망과 감정에 굴복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속박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 빠지게 됩니다. 샬롯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Children are persons; ergo, children must have liberty. Parents have suspected as much for a generation or two, and have been at pains not ‘to interfere’ with their children; but our loose habits of thinking come in our way, and in the very act of giving their freedom to children we impose fetters which will keep them enslaved all their lives. That is because we confound liberty and licence and do not perceive that the two cannot co-exist. . . . The child who has learned that, by persistent demands, he can get leave to do what he will, and have what he likes, whether he do so by means of stormy outcries or by his bewitching, wheedling ways, becomes the most pitiable of all slaves, the slave to chance desires. . . .
“The first duty of the parents is to teach children the meaning of must; and the reason why some persons in authority fail to obtain prompt and cheerful obedience from their children is that they do not recognize must in their own lives. . . . They allow themselves to do what they choose; there may be little harm in what they do; the harm is that they feel free to allow themselves. . . .
“The parent, the mother especially, who holds that her children’s rule of life must be ‘Children obey your parents for it is right‘ certainly secures obedience, as she secures personal cleanliness or proper habits at table, because she has a strong sense of the importance of these things. As her reward, she gains for her child the liberty of a free man, who is not under bondage to his own wilfulness or victim of his own chance desires.” The Story of Charlotte Mason, pp. 225-227
“어린이는 인격체이며, 따라서 어린이는 자유를 가져야 합니다. 부모들은 한두 세대 동안 이를 의심하고 자녀를 ‘간섭하지 않으려’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일한 사고 습관이 걸림돌이 되어 자녀에게 자유를 주려는 행위 대신 아이들을 평생 노예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유와 의무를 혼동하고 두 가지가 공존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 . 끈질기게 요구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폭풍 같은 외침으로, 구슬리고 넋을 빼놓는 요란한 방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아이는 모든 노예 중에서 가장 불쌍한 노예, 즉 변덕스러운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 . .
“부모의 첫 번째 의무는 자녀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권위자로써 자녀에게 즉각적이고 기쁨의 순종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라는 개념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 .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하도록 스스로를 허용합니다. 물론 그들이 하는 일에는 대부분 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해로운 것은 그들이 자신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그 자체 입니다. . . .
“부모는 특히 어머니는 삶 속에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식탁에서 개인 청결이나 올바른 습관을 가지게 함으로써 순종을 이끌어 냅니다. 이러한 것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에 얽매이거나 임의적인 욕망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아는 자녀들이 그녀의 보상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자녀에게 일관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요? 아니요, 우리도 인간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도움으로 우리도 선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 가지 더 적용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권위를 남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는 광범위한 주제이며 실제로 다음 핵심 가치인 권위와 순종의 원칙은 자녀를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에 의해 제한됩니다. 다음 핵심 가치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이러한 한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미리 읽고 싶으시다면 『교육 철학』 5장을 살펴보세요. 사실 이 책에서 이 시리즈에서 논의하는 모든 핵심 가치에 해당하는 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교육 철학』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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